[독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교수의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 독서 노트 입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을 정리 했습니다.

사회적 요구와 국가 비전이 일치하면 국가는 발전한다.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을 되돌아본다.

첫째 건국화, 나라를 세웠다. 둘째 경제화, 경제 발전을 이뤘다. 농촌 농업 경제에서 도시 공업 경제를 이뤘다. 셋째 민주화, 주도 세력을 바꿨다. 넷째 선진화,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갈 것인지, 몰락할 것인지 경계에 서 있다.

우리는 현재 선진국인가. 다시 말해, 지식 수입국 인가, 지식생산국 인가.

21.7.2.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공인했다. K-POP, K-Culture, K-Sports로 세계를 리딩하고, 2022년엔 3만 5천불 GDP를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수준, 삶의 질, 행복 지수, 자살율, 출산율은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건국화, 경제화 (산업화), 민주화는 했지만, 선진화는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지식 수입국으로 이룰 수 있는 높이까지 모두를 이뤘다. 우리는 지식 생산국 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우리는 지식 생산국, 즉 철학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이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즉 철학의 시선 높이로 올려야 선진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사유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이고, 시선이란 “눈의 방향” 이다.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탁월한 사유의 시선” 으로 표현한 것 입니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든 나라든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철학, 필로소피 (Philosophy)는 원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되었다.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 입니다.

즉, “사랑이나 애착”을 뜻하는 말과 “지혜나 지성”을 의미하는 말의 합성어다.

철학이란 믿음의 세계에서 생각의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철학은 독립일 때만 가능하다. 독립은 홀로 서는 것이다. 독립할 때 인간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고독” 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고독과는 다르다. 고독은 외로움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독립, 고독은 철학적 수준의 사유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도 그 시대의 정해진 이념을 이탈한 가장 고독한 사람이었다.

시 (視) , 관찰과 몰입 … 궁금증과 호기심이 관찰과 몰입을 부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시초를 “경이 (타우마제인, Thaumazein)” 라고 했는데 타우마제인은 “놀란다”는 뜻으로 사물에 대한 지적 경이감을 뜻한다.

장자는 ” 더러운 진흙 구덩이에서 나 자신만의 즐거움 (자쾌 自快)을 택할지언정, 통치자(왕)에게 얽매이는 삶을 살지는 않겠다” 라고 했다.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나”를 죽여야 새로운 “나”가 드러난다.

“자유” 란 말 자체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 입니다.

덕은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힘”. 이러한 상태가 바로 “태연자약 泰然自若” , 즉 기세 없는 기세를 갖은 상태다. 태연자약이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자신만의 흐름이나 결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일등보다는 일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고, 일류는 새판을 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제1집 “시문집” 제16권 “자찬묘지명”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 (신아지구방 新我之舊邦)” 우리는 훈고에 갇힌 대한민국에 창의의 기풍을 생산하려 덤벼야 합니다.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탁월한 사람은 논변에 빠지지 않는다. 논변에 빠진 사람은 탁월하지 않다”

순자 “권학 勸學” 편에 나오는 좋은 글 입니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난다. 적토성산 積土成山, 풍우흥언 風雨興焉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난다. 적수성연 積水成淵, 교룡생언 蛟龍生焉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적선성덕 積善成德 , 이신명자득 而神明自得 , 성심비언 聖心備焉

가장 높은 차원에서의 지적 도전이 철학을 탄생 시켰다. 세계의 주도권이 신에서 인간에게 넘어오면서,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천명(天命)의 시대에서 도(道)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왔다.

철학의 아버지, 최초의 철학자는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 다. 아리스토텔레스, 서양철학사를 쓴 러셀도 최초의 철학자를 탈레스로 말하고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라고 했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관찰과 몰입을 부른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지닌 채 진실하게 보고 집요하게 관찰하면, 대상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던 생소함이 등장할 것이고, 그러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것을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이” 라고 했습니다.

철학은 사유를 사유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유 하는 것이다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장자의 “자기 살해”는 기존의 가치관에 결탁 되어 있는 나를 죽임으로써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충만해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허심(虛心)”의 상태를 갖게 한다.

덕(德)은 나를 나로 만드는 힘德이란 자기를 자기이게 하는 가장 밑바탕의 힘입니다. 덕이 온전해졌다는 말은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이 힘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태연자약(泰然自若)”, 기세 없는 기세를 갖는 상태다.

泰然은 “아주 크고 넓고 여유로운 모습” 이고, 自若은 “자기가 자기로만 되어 있음” 을 뜻하는 말이다. 나무 닭 (목계 木鷄)은 자기가 자기로만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人. 참된 사람이 있고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 … 참된 사람, 즉 인격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지식, 즉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이론적이고 지적인 통찰, 새로운 시대의 식을 가슴에 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도덕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선자불변(善者不辯) 변자불선(辯者不善) … 탁월한 사람은 논란에 빠지지 않는다. 논변에 빠진 사람은 탁월하지 않다.

장자나 노자, 순자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불변하고 절대적인 보편 진리는 없습니다. 장자나 노자나 순자에게도 이런 식의 진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철학은 시대의 지식 입니다. 한 시대의 특수한 문제 의식을 보편적 단계의 사유 체계로 승화 시킨 것이 철학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보편화된 사유 체계가 세계의 모든 문제에 유효하거나, 언제나 유효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지식 생산국, 선진국이 되길 바라면서 ……

독서노트 글쓰기 20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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