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26.10.25. | 🔄업데이트 2026.10.27.
유체역학, 인생의 흐름을 선택하다
기계공학에는 4대 역학, 큰 줄기가 있습니다. 정역학, 동역학, 열역학, 그리고 유체역학입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전공으로 유체역학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다른 세 분야가 ‘정지된 구조’를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유체역학은 ‘흐름’과 ‘움직임’이라는 변화 그 자체를 다루는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멈춰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대학원 시절, 유체역학 실험실에서 폴리머를 가지고 유체의 흐름을 분석하던 시간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점도가 다른 폴리머 용액이 관(管) 속을 흘러가는 양상을 밤새 들여다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도 분명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유체역학 전공 하나가 유압으로 작동하는 자동변속기 연구개발 뿐만아니라 43년이 지난 지금도 저를 같은 분야에 서 있게 할 줄은요.
정확은 예술, 복도에서 만난 한 문장
신입 엔지니어로 연구소 엔진연구부에 배치되던 날, 본관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작은 문구 하나를 마주쳤습니다.
“정확은 예술이다.”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가는 표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한 문장이 제 안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도면 하나의 치수, 실험 데이터 하나의 소수점, 보고서 한 줄의 표현까지 – 모든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깨달음은, 이후 43년간 제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엔지니어링은 결국 정확함을 추구하는 과정이고, 그 정확함이 쌓여 신뢰가 된다는 것을 그 복도에서 처음 배운 셈입니다.
남이 주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가장 치열했던 기억 중 하나는 소형 자동변속기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단순하지만 뼈아픈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핵심 기술을 사오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였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변속기를 우리 손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끝에 IR52 장영실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상패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밤을 새우고, 같이 좌절하고, 또 같이 버텨준 팀 동료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혼자 해낸 성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성취의 뒤에는 함께 고생한 팀 동료가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포춘지 표지, 그리고 하나의 직감
2010년, 미국 포춘(Fortune)지가 “THE TOUGHEST CAR COMPANY OF THEM ALL”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구축한 DFSS(Design for Six Sigma) 인프라를 다뤘습니다. 글로벌 매체의 표지를 통해 우리의 품질 혁신 노력이 조명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은 단순한 자부심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DFSS는 자동차 산업에만 머물 기술이 아니라는 직감이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산업에서도 이 방법론을 통해 품질과 신뢰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 훗날 제가 자동차를 넘어 더 넓은 산업과 기술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작은 씨앗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확 바꾼다
아시아경제가 2012년 3월, “남양연구소 확 바꾼다”는 제목으로 다뤘던 것처럼, 저는 엔지니어로서의 연구개발 경력과 DFSS추진팀장으로서 개발 품질 혁신을 이끌었던 경험을 인정받아 특허실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설계도면을 그리던 사람이 특허를 다루는 자리에 앉게 된 셈입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돌아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기술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그 기술을 지키는 것도 결국 엔지니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허실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대차그룹의 특허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현대모비스에 특허팀 조직을 새로 신설하도록 지원하고, 국내외 특허 출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해외에서 특허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직접 대응을 이끌었고, 회사가 가진 기술 자산과 경쟁사의 기술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허맵을 구축하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도면의 치수 하나까지 정확해야 했던 엔지니어 시절의 습관은, 특허 명세서의 단어 하나, 청구항 한 줄을 다듬는 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정확은 예술”이라는 문장은 설계실에서도, 특허실에서도 똑같이 유효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체득한 것들 – 국경을 넘나드는 기술 분쟁, 각국마다 다른 지식재산권 제도, 보이지 않는 기술장벽 속에서 우리 기술을 지켜내는 일 – 은 훗날 제가 무역기술장벽(TBT)에 관심을 갖게 된 또 하나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기계에서 TBT로, 전환의 이유
40년 넘게 기계와 하드웨어, DFSS, 특허를 다루던 제가 지금은 AI,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무역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뜬금없는 전환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평생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활용해, 우리나라가 무역기술장벽(TBT)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고, 수출을 확대하고, 더 번영하는 나라가 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바퀴 달린 데이터 센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다뤄온 하드웨어와, 지금 세상이 요구하는 사이버보안·모빌리티·디지털을 잇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블로그를 쓰는 이유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같은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엔지니어로서 쌓아온 경험을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전달해서, 그들이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시행착오가 줄어들면, 결국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될 거라 믿습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여전히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책 “Engineer, 행복한가”
현대자동차 연구소를 퇴임하면서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세계 최고의 차량을 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써서 후배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책의 표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유익한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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